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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내부자 거래의 안전장치인가, 새로운 허점인가: 10b5-1 계획

by 행복한 투자자 2024. 10. 5.

기업 내부자 거래의 안전장치인가, 새로운 허점인가: 10b5-1 계획

월스트리트의 한 고위 임원이 자신의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매각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해당 기업은 예상치 못한 실적 하락을 발표했고 주가는 급락했다. 이는 내부자 거래일까, 아니면 단순한 우연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10b5-1 계획'이다.

10b5-1 계획: 내부자 거래 방지의 새로운 패러다임

10b5-1 계획은 기업 내부자들이 자사 주식을 거래할 때 내부자 거래 혐의를 피할 수 있도록 고안된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규정이다. 2000년에 도입된 이 규정은 기업 임원, 이사, 주요 주주들이 사전에 정해진 일정과 조건에 따라 자사 주식을 매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 계획의 핵심은 간단하다. 내부자는 중요한 비공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미래의 특정 시점에 주식을 매매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이후 실제 거래가 이루어질 때는 내부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이전에 세운 계획에 따라 자동으로 거래가 실행되므로 내부자 거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10b5-1 계획의 작동 방식

10b5-1 계획은 다음과 같은 주요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사전 설정: 내부자는 중요한 비공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2. 구체적 조건: 계획에는 매매할 주식의 수량, 가격, 날짜가 명시되어야 한다.
  3. 자동 실행: 일단 계획이 수립되면, 내부자의 추가적인 개입 없이 자동으로 실행된다.
  4. 수정 제한: 계획 수정이나 취소에는 엄격한 제한이 따른다.

예를 들어, A기업의 CEO가 6개월 후 자사 주식 10,000주를 매도하기로 10b5-1 계획을 수립했다고 가정해보자. 6개월 후, A기업이 중요한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더라도, 이 계획에 따라 주식 매도가 자동으로 실행된다. 이 경우 CEO는 내부 정보를 이용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최근의 규제 변화: 더 엄격해진 10b5-1 계획

2022년 12월, SEC는 10b5-1 계획에 대한 새로운 규제를 발표했다. 이는 계획의 남용을 막고 투자자 신뢰를 높이기 위한 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변경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냉각 기간 도입: 이사와 임원은 계획 수립 후 90일(또는 120일) 이후에만 거래를 시작할 수 있다.
  2. 인증 요구: 이사와 임원은 계획 수립 시 중요한 비공개 정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증해야 한다.
  3. 복수 계획 제한: 동일 종목에 대해 복수의 10b5-1 계획을 가질 수 없다.
  4. 공시 강화: 기업은 10b5-1 계획의 채택, 수정, 종료에 대해 더 자세히 공시해야 한다.

SEC 의장 게리 겐슬러(Gary Gensler)는 이러한 변경에 대해 "지난 20년간 제기된 비판을 반영한 것"이라며, "내부자들이 책임 규정을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10b5-1 계획의 효과성: 연구 결과는?

10b5-1 계획의 효과성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한 연구 결과는 이 계획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하버드 로스쿨의 법률 저널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10b5-1 계획을 통한 CEO의 주식 매도는 소송 위험이 높은 기업에서 더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계획을 통한 거래가 분기별 실적 발표 직전 40일 동안 더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10b5-1 계획을 통한 거래와 그렇지 않은 거래 모두 '기회주의적 타이밍'의 징후를 보인다는 것이다. 다만, 계획 외 거래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일부 CEO들이 10b5-1 계획의 허점을 이용해 개인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고액의 거래에서는 계획 내외의 거래가 비슷한 수준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란과 비판: 10b5-1 계획의 허점

10b5-1 계획에 대한 비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단기 계획의 남용: 일부 내부자들이 중요 정보 공개 직전에 단기 계획을 수립하여 이익을 취한다는 지적이 있다.
  2. 계획 취소의 문제: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계획을 취소하는 행위가 사실상의 내부자 거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3. 복수 계획을 통한 헤지: 여러 개의 계획을 동시에 운영하여 시장 상황에 따라 유리한 계획만 실행한다는 의혹이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여 SEC는 앞서 언급한 규제 강화 조치를 취했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향후 전망: 더욱 강화될 규제

전문가들은 10b5-1 계획에 대한 규제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영역에서 추가적인 규제가 예상된다:

  1. 냉각 기간의 연장: 현재 90일(또는 120일)인 냉각 기간을 6개월 이상으로 연장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2. 계획 취소에 대한 규제: 계획 취소에 대해서도 일정 기간의 제한을 두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3. 공시의 실시간화: 10b5-1 계획의 수립, 수정, 취소에 대한 실시간 공시 의무화가 고려될 수 있다.
  4. AI를 활용한 모니터링: SEC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10b5-1 계획의 남용을 탐지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

결론: 균형 잡힌 접근의 필요성

10b5-1 계획은 기업 내부자들에게 합법적으로 자사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는 동시에, 투자자들에게는 내부자 거래에 대한 보호막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계획이 때때로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활용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향후 규제 당국은 기업 내부자의 정당한 재산권 행사와 일반 투자자 보호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기업들은 10b5-1 계획을 윤리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함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결국 10b5-1 계획의 성패는 규제 당국의 감독 능력, 기업의 윤리 의식, 그리고 시장 참여자들의 감시가 얼마나 조화롭게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규정을 넘어, 공정하고 효율적인 자본 시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부인 것이다.

Citations:
[1] https://equiniti.com/us/insights/eq-views/the-10b5-1-plan-what-executives-need-to-know/
[2] https://en.wikipedia.org/wiki/SEC_Rule_10b5-1
[3] https://www.investopedia.com/terms/r/rule-10b5-1.asp
[4] https://www.dorsey.com/newsresources/publications/client-alerts/2024/6/first-insider-trading-case-based-on-rule-10b5-1
[5] https://www.hklaw.com/en/insights/publications/2022/12/a-closer-look-at-the-rule-10b51-amendments-adopted-by-the-sec
[6] https://www.americanbar.org/groups/business_law/resources/business-lawyer/2024-winter/the-myriad-ways-sec-rule-10b5-1-is-invalid/
[7] https://governance.weil.com/securities-litigation-enforcement-investigations/sec-taking-a-closer-look-at-rule-10b5-1-trading-plans-on-the-rulemaking-and-enforcement-fronts/
[8] https://corpgov.law.harvard.edu/2023/06/22/how-effective-is-sec-rule-10b5-1-in-deterring-insider-trading/